(小論) 사상은 법률에 어떻게 반영되는가 - 중국법에서의 '친린법(親隣法)' 중국사관련

이웃분께서 '중국법제사에 있어서 사상이 법률에 미친 영향 문제'를 언급하셨기에 이 문제로 좀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추가멘트에서 로마법-게르만법 문제를 말씀해주시다보니, 저 역시 이 부분에 있어서는 나름의 小論(?)을 덧붙여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상이 법률. 특히 물권법에 영향을 끼친 사례로서 주목할 만한 것 같습니다.

이에 포스팅을 감히 올려봅니다. 혹여 문제가 있거나 잘못된 점이 있으면 비판과 질정의 말씀 역시 부탁드립니다.  



1. 유교에서의 '개인'의 정의 

로마법에서의 개인의 물권(物權)행사는 그리스-로마사상에서의 개인에 대한 정의와 밀접한 연관이 있고, 특히 근대법에서의 물권법은 데카르트 이래로의 근대사상에서의 개인의 정의. 즉 '절대적 개인'과 그렇게 '절대적인 개인이 보유한 권리'에 근거하는 것이라고 파악하고 있습니다. 즉 개인의 정의가 개인의 물권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비슷한 맥락은 전근대 중국 법체계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유가사상의 독특한 개인정의가 작용하고 있다고 봅니다.

즉 유가사상은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의 권리는 존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개인이 사회에 정의되는 것 혹은 존재하는 것은 '절대적인 개인'이 존재하느냐가 아니라, 그 개인이 사화적 관계와 우주적 질서와 어떤 연관관계를 맺고 있느냐에 의해서 결정되게 됩니다. 

때문에 유가의 논리에서 부모-가족과 향촌공동체가 중시되는 것은 바로 그러한 맥락입니다. 부모-가족은 자신이 태어나면서 제일 먼저 사회적 관계를 맺는 대상이고, 농촌사회에서 농촌공동체의 협조와 부조는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부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논리에 따르면 개인의 내면적 선택과 신념의 체계는 존중되어도, 사회적 행동과 권리의 행사는 '자신이 관계를 맺고 있는 집단'에 의해서 제약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것이 바로 물권법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법률적 권리에서 총체적으로 반영된다고 봅니다.



2. 물권법에서의 독특한 개념 - '친린법(親隣法)'의 존재

개인의 선택 자체를 중시하는 유가사상 답게, 부동산 및 동산의 매매권리에 대해서는 일찍부터 보장되고 있었습니다. 이미 정전제(井田制)가 실시되어 개인의 토지매매권이 제약될 것 같은 주대에서도 토지의 소유권 혹은 점유권에 대한 매매가 이루어지고 있었고, 한대에서는 동중서가 '송곳 꽃을[入錐] 땅조차 없는 현실'을 개탄하면서 그런 현실이 벌어지는 이유로 호족들의 토지매매를 거론하고 있으니깐요. 

하지만 이렇게 토지 자체에 대한 매매는 자유롭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권리를 행사하는 개인은 자신이 연계하고 잇는 다른 사회적 맥락과 불가결하다는 유가의 논리 때문에, 독특한 개념이 탄생하게 됩니다. 즉 만일 토지-가옥 등과 같이 경제적으로 중요한 대상을  매매해야 한다면 자신과 사회적 연계를 가지고 있는 집단(가족 및 친족, 향촌공동체의 이웃)을 우선으로 배려해야한다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친족(親)과 이웃(隣)에게 먼저 부동산을 매매하고, 그러고서도 안될 경우에 타인에게 부동산을 매매할 수 있다는 '친린법(親隣法)'의 발생이었습니다. 이러한 친린법의 개념은 일찍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존재하지만,1) 관행을 넘어서 법령으로 구체화되는 것은 당대(唐代)의 일로 보입니다. 


"천하 여러 군에서 도호(逃戶)의 전택(田宅)이 함부로 타인에 의해 없어져서 부세를 책임지는 자가 부족하게 되는데, 먼저 이를 친린(親隣)에게 매매함으로서 그에게 되돌려주어서 의투(依投)하는 바가 없게하라."

天下諸郡逃戶, 有田宅産業, 妄被人破除, 幷緣欠負租庸, 先已親隣賣買, 及其歸復, 無所依投.


- 『당회요(唐會要)』권85, 「도호(逃戶)」


이와 같은 당대의 법률에서의 친린법 개념의 설정과 시행논리는, 다시 송 초의 법률인 『송형통』에서도 반영되게 됩니다.2) 아래는 그러한 친린법의 시행개념을 보다 구체화하여 제시하고 있습니다.


마땅히 물업(物業)을 전당잡거나, 매매하거나, 의탁할 때에는 먼저 가까운 친척[房親]에게 묻고, 친척이 필요 없다고 하면 사방의 가까운 이웃[四隣]에게 묻고, 그도 필요없다고 하면 비로소 타인에게 거래 할 수 있다.

다만 친척이 가격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다면, 가격을 높게 쳐주는 곳과 거래할 수 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소유주[業主], 대리인이나 심부름꾼[牙人] 등이 친척과 이웃을 속여 계약서[契帖]내에 가격을 함부로 올리거나 함부로 숨긴 경우에는 속인 금액수와 정황의 경중을 참작하여 처분한다.

- 『송형통(宋刑通)』권 13, 「호혼(戶婚)」률, '전매지당논경물업문(典賣指當論競物業門)'


이처럼, 중국의 법제사에는 분명 유교사상이 영향을 미치면서, 민사법적 측면에서 개인의 권리라는 측면에 있어 독특한 개념을 만들어내는 양상이 존재했었습니다. 특히 경제적인 권리에서 보았을 때 이런 친린법만한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 예시로 들게 되는군요. ^^;;

물론 친린법의 설정은 비단 유교적 윤리의 반영 하나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이는 농업을 중심으로 하는 향촌공동체의 특성에서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니깐요.
농촌사회에서 수확과 개별 수입이 불안정한 가운데에서 농민들은 이미 공동납적 관행을 통해 부세부담을 공유해오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재산이 매매된다면 친척 혹은 이웃과 같은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우선적인 권리를 주어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겠죠.

또한 비교적 균질한 구성원이 존재하는 농촌공동체 내부에, 이방인-외부자가 부동산 매매를 하고 그로서 경제적 권리를 행사하여, 향촌공동체 내부의 운영과 내적 단결에 균열이 발생하는 것을 미연에 막으려는 전근대 농촌공동체의 집단심리가 반영되어 있는 것이기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농촌공동체의 유지를 통해서 부세납부안정을 노리는 국가의 의도도 개입되었습니다.  



3. 친린법의 미래 : 그대로 시행되었을까?

이처럼 독특한 개념으로서의 친린법은 당대에 본격적으로 시행되었고, 송 초에 구체화되었습니다만.....불행히도 송이란 사회는 중국사회가 나름의 내부적 변화를 겪고 있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친린법이 송 초에 당의 법률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지만 그 시행에 있어서는 파행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죠.
 
남송시대의 『명공서판청명집(名公書判淸明集)』단계에 오면 친린법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대상이, 親 혹은 隣 한쪽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親과 隣  양쪽에 속해야 적용될 수 있는 것으로 변화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법조문만 본다면 친린법이 더욱 엄격해진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이것은 사실상의 사문화를 뜻했습니다.3)

왜냐면 '친척이면서도 이웃에 거주하는 경우'가 거의 드물었기 때문에, 사실상 친린법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대상 자체가 제한되기에 이르렀던 것이죠. 이는 친족이라 해도 지역 간 거주이동이 활발해지고 경제적 관계가 우선되어 갔던 송대의 양상에서, 국가가 명시적으로 '유교적 이념'을 우선시한다면서도 현실에 적응할 수밖에 없다는 모순된 문제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나중에는 이러한 친린법조차도 존재는 하지만, 결국 그 우선순위가 토지와 가옥을 저당잡고 있는 이[典主]에게 우선시되고, 그 다음이 친린권자로 배정되는 양상이 나타나죠.4) 이처럼 경제적 관계가 우선됨에 따라서 친린법은 차츰 그 효력이 상실되어 갔다고 보아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모순의 분기점에서, 변화하는 사회에 대응하기 위한 논의도 유학 내부에서 분화되어 오는 것이라고 봅니다. 즉 종래의 질서를 회복하기를 바라던 이학(理學)자들과, 사회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자 하는 경세(經世)론자들이 분화되고, 다시 그렇게 분화된 이들도 영향을 주고받으며 상호교류하는 상황이 형성되었으니깐요.

송대 이후의 유학과 법률운영은 바로 이런 양상에서 출발한다고 보아도 과언은 아니리라고 생각합니다.





덧 : 화요일 쯤에나 다뤄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었는데, 웹하드를 보니 일전에 떡밥춘추 3호 기재글을 쓰면서 친린법 개념을 참고하려 봤던 자료들이 있더군요. 이에 집에서나마 급한대로(...) 참고하여 쓰게 되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떡춘을 보신 분들께서는 굳이 새로운 논의라 할 수 없는 글을 보여드려 죄송합니다.

덧 2 : 역시나 사상관련 책들이 연구실에 있어서 그런지, '유학에서의 개인개념'에 관한 부분이 별다른 레퍼런스가 없이 평소의 제 지론과 개설서에서 간략하게 요약하는 사항 정도로나 쓰인게 마음에 걸립니다. 이에 제현들의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 주석

1) 니이다 노보루(仁井田 升)의 경우는 북위 균전령(均田令)의 시행에서도 이러한 양상을 찾을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仁井田 升, 『中國法制史硏究 - 土地法, 取引法』(東京大學出版社, 1960), 524, 531쪽.


2) 사실 이웃분께서 당대까지의 사례를 요구하셨던만큼, 이런 송형통.....즉 송대의 논의를 거론하게 되어 죄송할 따름입니다. -_-;;

다만 송 형통 자체가 가지고 있는 특성. 즉 송 초에 당의 계승하려는 의식을 반영하여, 사회적 변화에 대응하면서도 唐律의 체계를 그대로 보존하려는 법전이 바로 『송형통』이라는 점을 상고한다면, 여기서 당대의 법령의 특색과 의도를 어느 정도 참안할 수 있지 않을까 했습니다. 이전 전통법령의 충실한 반영이면서도 정작 송대 자체에는 안먹힌 고자법률이 송형통일지도요.


3) 이종찬,「명공서판청명집을 통해 본 송대 부동산 거래와 친린법」, 『법사학연구』31호, 50~51쪽.


4) 이종찬, 위의 논문, 49쪽.



* 주요 참고문헌
『당회요(唐會要)』
장진번 저, 한기종 역,『중국법제사』,소나무, 2006.
이종찬,「명공서판청명집을 통해 본 송대 부동산 거래와 친린법」, 『법사학연구』31호.
한국사상연구회,『조선 유학의 개념들』, 예문서원, 1995.


덧글

  • hyjoon 2011/07/03 19:44 # 답글

    저런 사상에 입각한 법제들은 잘 안지켜지는 경향이 있는 듯.........
  • 들꽃향기 2011/07/03 20:17 #

    원래 법은 어기라고 있는 것 아닌가요 (응?) 원래 거창한 사상에 입각할수록 괴리는 커지는 법이라. 어흑 ㅠ 다만 그래도 사회변화 이전의 사회..즉 당말~송대 이전까지는 나름의 현실성도 가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ㄷㄷ
  • 크핫군 2011/07/03 19:46 # 답글

    돈이 가족관계를 이겼군요;;
  • 들꽃향기 2011/07/03 20:17 #

    원래 제가 돈님의 승리를 이래서 확신하게 됩니다. 숭배하라! 자본주의!
  • Cicero 2011/07/03 19:46 # 답글

    잘 읽었습니다^^
    중국의 친린법 개념은 훗날 폴라니를 비롯한 자본주의 비판가들이 주장한 "사회에 묻어진 시장"개념을 연상시키는 것 같습니다. 비록 실제 실시에 있어서는 많은 문제가 있긴 했지만, 여러가지로 시사점을 던져주는것 같네요.
  • 들꽃향기 2011/07/03 20:19 #

    말씀대로입니다. ㅎㅎ 사실 이런 논의 역시 큰 틀은 "경제 외적 관계와 경제적 관계의 길항관계를 주목하고, 근대로의 이행은 바로 경제적 관계가 주가 되는 것."이라는 고전 경제학 혹은 전통 사회주의의 논의에서 차용한게 큽니다. 물론 폴라니도 그 전통에 서 있다고 감히 생각하고요.

    실제로 친린법은 시대가 변화되어가면서 사실상 효력을 잃었지만, 사회변화 이전의 시점까지만 해도 사상적 기저를 바탕으로 언급하신 '사회'를 보존하려던 노력으로 볼 수 있으리라 봅니다. ^^

    읽어주시고 적절한 답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행인1 2011/07/03 20:06 # 답글

    말씀하신대로 유가적 사상의 구현에(어쩌면 이건 그냥 간판일지도?) 농촌공동체의 안정과 수취의 안정까지 획득하려는 입법자의 의도가 있었군요. 물론 현실은...orz
  • 들꽃향기 2011/07/03 20:20 #

    그렇습니다. 말씀대로 사상-향촌-국가의 의도가 전근대 농촌사회라는 현실에서 결합한 것이 바로 친린법의 시행이라 할 수 있겠죠. ㄷㄷ 근데 현실은 언제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시궁창이 됩니다. OYL
  • 위시 2011/07/03 21:25 # 답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글머리에 언급되다니 이런 *-_-*

    전체적인 글 내용을 쭉 읽으며 생각나는 조문은 헌법 제23조 제2항이네요. 국민의 합의가 헌법에 담기는 건데, 재산권보장을 제1항에서 선언한 뒤 제2항에서 재산권 행사의 사회적 제약을 명시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토지재산권의 제한은 좀 더 광범위하게 이뤄지는 것도 정당화된다는 것. 유가에서도 같은 맥락이 있었네요. 심지어 점점 축소해석 적용하는 것까지도 똑같습니다(최근 판례는 이를 점점 축소해가는 방향).

    일반적으론 유가에서도 개인의 선택권을 인정했다는 것이 더 와닿겠지만, 이게 궁금해지네요. 로마법은 점유라는 사실상태를 권리로 인정하지 않은 반면 게르만법은 Gewere(게베레)라 하여 사실상, 겉으로 보기에 재물을 지배하고 있는 상태에 강한 권리를 부여했습니다. 동양법제에서도 점용권의 매매가 인정되고 있다면(이러한 관례는 현재 대법원 판례도 미등기건물 매매나 단순한 점용권의 매매현상을 인정한 바 있습니다), 점유에 대해 점유권과 같은 물권을 부여한 것인지 알고 싶네요.

    아마, 동양법제에서 현재의 담보물권과 같은 수준의 모습이 밝혀진다면 연구가 확 꽃피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위의 비로긴같은 말은 진짜 베끼는 놈들에겐 안 하고 엄한 이들에게 그러곤 하죠.
  • 들꽃향기 2011/07/03 21:43 #

    1. 쓴 동기를 명확히 하려는 편집증(?) 때문에 그렇습니다.....OYL

    2. 오호라. 우리 헌법 중에서도 그런 양상이 존재하고 있었군요. 역시나 근대 법제에서도 사회의 공공선을 위해 재산권을 제한한다는 개념은 고금을 막론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축소적용되고 있다는 것도....OYL

    3. 동양법제에서의 점유권 개념의 연구는, 언급하신 게르만권 법전에서의 게베레 연구에서 자극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언급하신 준 현대적 양상으로서의 점유권 뿐만 아니라 좀 더 적극적인 양상도 있다고 보고 이를 주목하는 연구도 있는 것 같습니다.

    (엉뚱한 예이기는 하지만 조선 후기의 경우, 소작농들이 자신의 '경작권'을 매매하는 양상조차도 존재했는데, 이것은 어찌 본다면 토지이용권 개념에 연계된 점유권적 개념의 확장(?)이라고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다만 제가 역시 법학에 앎이 짧다보니 점유권 개념의 구체적인 세부로 들어가면 더 이상 첨언하기 힘들것 같군요. 죄송합니다....llOYL

    이렇게 읽어주시고 여러 말씀을 남겨주시니 감사합니다. 좋은 저녁 되십시오! ^^

    덧 : 굳이 신경쓰면 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ㅎㅎ
  • 소하 2011/07/03 22:24 # 답글

    매매에 관련된 사항은 전혀 고려해 본적이 없었는데, "친린"개념은 참 재미있군요. 호족이나 귀족 계급의 고정화에도 영향을 주었을 거라는 생각도 드는군요. 이것을 넘어서 계급유지를 위해서 이 제도를 실행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가져봅니다.
  • 들꽃향기 2011/07/03 22:30 #

    아....... 저야말로 향촌공동체와 종족의 개념에서 생각해보았지, 계급유지의 관점에서 시행했을 가능성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군요.

    비슷한 친족 내 거래와 이웃(보통 거주지가 비슷하다면)을 우선시한다는 것은 자신이 속한 집단-계급에의 매매를 우선시하고, 타 이질적 집단의 매매를 통한 종래 지배질서로의 유입-교란을 방지할 수 있을 테니깐요....ㄷㄷ 물론 언급하신대로 토지집적에 역으로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도 점칠 수 있겠습니다.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점에 대해 좋은 말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보다 이런 측면에서도 생각해봐야겠군요.
  • 들꽃향기 2011/07/04 00:48 # 답글

    어휴 우리 비로그인님께서는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으셔서 덧글을 삭제하셨는지.
  • 2011/07/04 14:1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들꽃향기 2011/07/04 16:26 #

    아. 말씀하신 바는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아무래도 중국 전통사상에서의 왕토(王土)사상을 염두에 두고 말씀을 하신 것 같고. 이것이 중국에서의 전통사회와 토지소유를 설명하는 주요한 사유라는 점에서 언급하신 점을 허투루 대답할 수 없을 것 같군요. ㄷㄷ


    1. 물론 왕토사상 자체는 '천지가 천자의 소유가 아닌 것이 없다.'라는 사상을 가지고 있지만, 이것은 '공(公)'의 논리에서 설명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즉 천자의 소유인 땅을 개별 개인들이 '소유'하고 있음에도 부세등을 천자의 조정에 납부해야하는 주요 근거로 작용하는 것이지 근본적인 소유권 자체에 대한 개입이나 제한은 약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천하에 모든 것이 천자의 토지라 자부하면서도, 토지에 대해서 '천자의 소유권'을 직접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임자없는 땅[山林川澤]에서의 수익으로, 이 수익이 그나마 한대까지는 천자의 소부(少府)의 수익으로 규정되었습니다. 그에비해 다수의 경작지...즉 소유자가 분명한 곳에서는 봉건적인 수조권(收租權)의 존재가 상정되어 그 세금이 공식 조정의 수익으로 전용되었고 말이죠. (물론 수조권을 분배받은 몇몇 귀족과 지배계층도 존재합니다만)

    따라서 저는 언급하신대로, '기본적으로 천자-국가의 소유인, 천하의 일부를 소유한 개체가 천하의 일부를 매매할 수 있는 것이 개인의 소유권 행사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라는 질문은 타당한 제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 세부시행에 있어서, 소유권자가 분명한 경작지에 대한 수익과, 소유주가 불분명하거나 없는 곳에서의 수익을 구분하고 후자에서 국한하여 왕토사상의 논리가 실질적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는 것은 일찍부터 개인의 소유권이 분리되어 생각된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2. 말씀하신대로 저 역시 혈연공동체나 독점적 공동체의 해체와 그에 따른 역사적 결과로 보아야 할 것 같은데, 이렇게 또 생각하면 또 하나의 '반동'(?)때문에 설명하기가 힘들어지는 측면이 감히 있습니다.

    즉 명대의 경우를 염두에 두고 있는데, 오히려 변화하는 사회에 대응하기 위해 약간이라도 경제적-사회적 부조를 용이하게 하고자 종족집단의 힘과 결집이 강화되고, 이들이 향촌에 집단으로 세거하는 일이 발생하게 되니깐요.
    하지만 이렇게 혈연적 공동체와 종족집단이 강화되는 시대적 반동에도 불구하고 친린법은 더 이상 이전처럼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설명을 저 스스로가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는 한은, 종족집단과 혈연공동체의 약화로 인한 요인보다는, 결국 경제주체자로서의 개인의 권리행사가 경제-사회의 발전에 따라서 상승해 가는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했었습니다.


    이상이 1차적으로 제기하신 질문에 드릴 수 있는 저 나름의 대답인 것 같습니다. ^^;; 혹여 제가 비밀글님의 질문을 미처 다 이해하지 못했거나, 혹은 제 대답 중에서도 부족하거나 아니다 싶은 부분이 있으시면 기탄없는 질정을 감히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
  • 迪倫 2011/07/09 14:17 #

    뒤늦게 답을 답니다. 자세히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명대의 경우 그렇게 반동적인 현상이 있으니 제가 말한 방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흥미있게 잘 읽고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 들꽃향기 2011/07/10 19:57 #

    아닙니다. ㅎㅎ;; 사실 말씀하신 방식이 오히려 정설적 시각이기도 합니다. 즉 통사는 혈연-종족 공동체의 구속력 감소와 개인의 경제적 권한 증가라는 두 가지 추세를 복합해서 바라보고 있으니깐요.

    다만 저는 명대의 '반동'에 대해서 사견을 더 덧붙인다면, 오히려 아직 국민국가적 혹은 근대국가적 통합기구가 부족하고 지역별로 격차가 큰 중국사회에서, 종족과 가문은 역으로 경제적 권한이 증대된 개인들이 살아남기 위해 결성한 '재관계화'과정의 산물로 보고 있습니다. (대신 자신들의 권한은 다소 포기를 하고 확실한 경제적-사회적 부조를 받는 것을 택하는)

    때문에 사실 따지고 본다면, 이렇게 개인들이 경제적-사회적 관계 속에서 선택한 종족-혈연집단의 관계가 명-청대 관계이기에 실제 종족-혈연집단의 구속력 약화라는 틀로 설명하는 것 역시 타당한 설명입니다.


    (특히 종족-혈연 집단 간의 분쟁으로 유명한 복건지역의 계투(戒鬪)를 보면, 분명 계투를 주도하는 구성원들은 종족-혈연집단이지만, 그 내부의 운영을 보면 복건지역의 경제적-사회적 문제로 인해, 종족-혈연적 관계에 국한되지 않고 거대 종족이 소규모 종족을 흡수해가거나, 단순히 데릴사위를 넘어서 양자-가자관계로 종족 내의 인재와 숫자를 확보하려는 양상을 보이고 있으니깐요. 이는 종족-혈연집단의 틀은 유지되지만 그 자체 내부의 구속력과 논리는 迪倫님의 제기처럼 약화되어가는 반증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다만 제 자신이 그렇게 '재관계화'된 종족-혈연집단의 구속력이라고 해서 이전보다 약화된 성격의 것인지는 의문의 소지가 있습니다. 종족-혈연의 도움을 받아 이 풍진 세상(...)을 극복할 수 있는 대신 자신이 포기해야하고 구속될 수 있는 측면이 있었을테니깐요.

    때문에 종족-혈연집단의 약화라는 측면보다는 경제적 개인을 중심으로 사회관계가 재편되는 양상을 더 주목하고, 다만 그런 개인이 명대에는 살아남기 위해 종족-혈연 공동체를 재선택하는 양상이 벌어지지 않았을까..했었습니다.

    이런 의식 때문에 명대의 양상 운운하게 되었습니다. 말이 지나치게 길어졌네요. ㄷㄷ; 오히려 迪倫님의 말씀으로 저 역시 생각을 정리해보면서 나름 재검토 해볼 수 있었습니다. 역시 문제가 있거나 아니다 싶은 부분이 있으시면 기탄없는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
  • 유유자적 2011/07/04 21:56 # 답글

    으어어 사회사는 딱 질색이라서 공부를 하나도 안해서 이해가 안됩니다. 쉽게 요약이 안될련지..
  • 들꽃향기 2011/07/04 22:04 #

    흐음 한줄요약 하자면, "유교는 개인의 존재 자체도 전적으로 절대적이라 보지 않고, 따라서 권행사도 절대적이라 보지 않으므로, 그 권리 행사에 있어서 개인과 관련된 공동체의 우선권을 인정한다. 그리고 이게 법으로는 친린법에 적용된다."....일까요....ㄷㄷ

    쉽고 명료하게 쓰지 못해서 죄송합니다..OYL
  • 2011/07/05 22:4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들꽃향기 2011/07/10 19:38 #

    아. 그렇군요. 죄송하실 것은 없습니다. ㅎㅎ 오히려 저야말로 ㄷㄷ
  • 잘읽었습니다 2011/07/09 01:09 # 삭제 답글

    매우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앞으로 자주 들려야겠습니다. ^^
  • 들꽃향기 2011/07/10 19:39 #

    뒤늦게 답글을 달게 되어 죄송합니다. 부족한 글이나마 잘 보아주셨다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
  • 아파치아 2012/06/17 16:46 # 답글

    ..허조(부민고..주장한분)의 힘이 대단하긴 대단했나봅니다...kbs역사스페셜2010.10.9한글-보니..허조,이사람?? ..그래서 결국 관리,백성 어느쪽도 피해가지 않게 조율합니다
  • 아파치아 2012/06/17 16:46 # 답글

    ..허조(부민고..주장한분)의 힘이 대단하긴 대단했나봅니다...kbs역사스페셜2010.10.9한글(무료보기)-보니..허조,이사람?? ..그래서 결국 관리,백성 어느쪽도 피해가지 않게 조율합니다
  • 2012/06/27 23:53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PKKA 2012/11/11 20:44 # 답글

    링크 신고 드립니다. 많은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굽신굽신
  • 김수한 2012/12/08 14:48 # 답글

    舊 이천원입니다. 옛날 이글루스 아이디랑 비번을 도저히 기억(...)할 수가 없어서 네이트 아이디로 다시 만들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요새 잘 지내시는지 ^^.. 아 그와 더불어 링크 신고드립니다 ㅎㅎ
  • 2013/09/07 00:44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명탐정 호성 2015/03/31 01:09 # 답글

    http://crazydmz.egloos.com/2473814


    반박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history&no=1538060

    친일인명사전은 이승만 시대 사망자에게 관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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